Artistliveshowcase label

오감도

이정배의 아티스트 라이브 쇼케이스
Jeongbae Lee's Live Showcase
2017. 6. 16 - 6. 17
Open hour_ pm8 - 9:30(Fri), pm2 - 3:30(Sat)
참여작가_ 이정배
협업_ 장덕수 오디오
사진기록_ 이우노
구술기록_ 김나형
기획_ 김나형, 최솔구
주관_ 디스위켄드룸
후원_ 서울문화재단
프로젝트 < 아티스트 라이브 쇼케이스(2017) >: 디스위켄드룸은 2017년 6월 한 달 동안 매주마다 윤정미, 정소영, 이정배, 박제성이 진행하는 ‘아티스트 라이브 쇼케이스’를 개최한다. ‘아티스트 라이브 쇼케이스’는 예술의 가치를 완결이 아닌 진행형에 두고 새로운 것이나 결과물(작품) 보다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Happen)’에 주목하는 디스위켄드룸의 프로젝트이다. 지난해에 이어 사진, 설치, 조각, 미디어 등 서로 다른 매체를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중인 네 명의 작가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현재 고민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퍼포먼스와 해프닝, 워크숍 등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This Weekend Room will host 'Artist Live Showcase 2017', which will be held by Jeongmee Yoon, Soyoung Chung, Jeongbae Lee and Jebaak every week for one month in June, 'Artist Live Showcase' is the project that focuses on 'Happen' rather than new or finished works by putting the value of art in a progressive form. Following last year, we invite four artists who are active on different media such as photography, installation, sculpture and media to show their performances, happening and workshops to the audience.

<이정배의 오감도>는 작가가 집요하게 탐구하는 다섯 개의 감각이 최근의 작업 결과물(작품, 목가구, 가전)에서 어떻게 감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퍼포먼스이다. 작가는 짧은 일인극의 형식을 빌어 놓여진 오브제들과 상호작용하며 일상의 궤적을 재연하고, 내면의 이야기를 방백처럼 들려준다. 관객들은 ‘작가 이정배’와 ‘목수 이정배’, 그리고 ‘사람 이정배’의 자아가 분리 불가분으로 얽힌 작가의 방에서 시청각과 미후각, 그리고 촉각을 함께 더듬어갈 것이다.

이정배의 오감도

작가 이정배(b.1974)의 아티스트 라이브 쇼케이스는 최근 로우더(Lowther pm4a unit) 스피커 유닛을 활용하여 작가가 직접 제작한 프로토 타입의 스피커 청음회로 시작되었다. 작가는 청음회에 적합한 몇 가지 곡을 준비하였고, 그 중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들려주었다.

이후 작가는 같은 곡을 3way 방식의 JBL 스피커로 다시 한 번 재생시켰다. 작가는 두 스피커에서 느낄 수 있는 오감의 차이를 설명하고, 다양한 곡들을 계속해서 들려주며 자신만의 스피커를 오랫동안 꿈꿔 온 이유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청음회가 끝나고 여음을 감상하는 사이, 작가는 걸음을 옮겨 목가구들 앞에 섰다. ‘1번 테이블’이라고 일컫는 소반부터 연필꽂이, 목검나무 칼, 대형 테이블까지 곳곳에 놓여진 크고 작은 목가구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모든 목가구들은 스피커와 마찬가지로 일상의 감각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작품과도 같은 결과물이라고 고백했다.

작가의 이야기가 끝난 뒤, 관객들은 현장에 놓여진 스피커와 목가구를 만지거나 자세히 관찰하였고, 이후 작가가 준비한 막걸리 또는 커피를 음미하며 작가와 개인적인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이틀간 진행된 < 오감도 > 퍼포먼스 중 아티스트 토크를 기록한 내용으로 일부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하였음을 밝힙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정배라는 작가입니다. 바쁜 시간을 내어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티스트 라이브 쇼케이스’는 작가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작가의 작업 기저에 이어지고 있는 일상의 면면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곳에는 저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 많이 놓여져 있습니다. 작품 이면에 얽히고 섥힌 저의 생활, 어쩌면 제 스스로도 인식할 수 없는 일상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자리네요. 솔직히 어렵기도 하고, 많이 긴장됩니다.

우선 제가 조금 전에 두 스피커로 여러 곡을 틀어드렸는데 어떠셨나요? 소리가 참 다르죠? 두 소리 모두 인공적인 것이긴 하지만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10년 전부터 제 스스로 청각 뿐만 아니라 시각과 촉각, 그 모두를 만족시키는 스피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비로소 처음으로 용기내어 그 꿈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아직 에이징 기간 중이지만 그저께 새벽, 처음으로 이 프로토 타입 스피커를 만들고 나서 아직까지도 무척 설레고 감격스럽습니다. 소리가 참 훌륭합니다. 소리를 억압하는 얇은 막이 없어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노래 부르는게 너무 좋아서 가수를 꿈꾸던 차였었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들어야 하는 시스템이 필요 했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저렴한 오디오 시스템과 턴테이블을 장만하여 음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노래를 위주로 들었는데 점점 좋은 소리에 대한 관심사가 옮겨 지더라구요. 물론 제가 가진 오디오시스템은 소리가 너무 형편없어서 화가 나기도 하고 몹시 불만족스러웠죠. 당연히 스피커나 앰프의 생김새 마저 못마땅 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장덕수 선생님의 앰프와 JBL 4312a스피커를 마련해서 음악을 들었어요. 그러던 중 양가 부모님의 건강이 악화되고 병간호와 육아 때문에 작업할 시간마저 부족해져 굉장히 괴로웠었어요. 그 때 삶이 너무 피폐해져서 아이들 때문에 접었던 오디오 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듣던 중에 점점 스피커의 생김새와 소리에 대한 불만족이 드러나더군요. 우선 3way 시스템을 통해 듣는 사운드가 너무 인공적인 것 같았어요. ‘어떻게 자연적인 소리보다 더 아름답게 가공된 소리가 가능하지?’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음식으로 비유하면 MSG의 맛과 같다고 할까요? 소리가 가공되는 과정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파수가 겹치는 것을 없애주는 네트워크로 처리해주는 회로가 없는 로우더(Lowther pm4a) 풀레인지 스피커 유닛을 찾게 되었죠.

스피커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대상입니다. 따라서 저에겐 청각적인 만족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요소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걸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름다움을 과연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했어요. 물론 아름다움은 규정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움을 규정 할 수 없는건 아름다움에겐 절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아름다움은 내 안에 있어서 아름답다 라고 판단되는 그 근거가 모두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모두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부분이 아름다움을 규정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죠. 또한 아름다움은 충동적입니다. 충동이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무언가 대상이 온전해지거나 완벽해 지려고 할 때 그 온전함을 깨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어떤 사물이 특정사물의 기능으로 충만할 때 그 사물의 기능과 전혀 상관없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사물에 침투해 사물이 기능 외에 외관적 아름다움과 공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사물에 끼어 들어가 있죠. 그래서 저는 뭘 하나 만들어도 기능의 사물을 만들면 되는데, 아름다움을 고민하죠. 스피커 역시 그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저의 시각적 만족을 이끄는 요소들이 개입되어 소리의 기능과 다른 아름다움이 개입된 거죠.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영화에서 금자가 감옥에서 총을 꼼꼼하고 아름답게 설계해요. 그리고 금자가 출소해서 먼저 출소한 제소자 친구에게 찾아가 총을 설계도 대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죠. 이때 친구가 이렇게 물어봅니다. “금자야, 이거 꼭 이렇게 만들어야 되니?”, 그러자 금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뻐야 해.”라고 대답해요. 저는 이 대사가 참 기억에 남아요.

저는 아름다움이 제 밖에 있지 않고 제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더 세밀하게 얘기해서 우리 안에 각각 다른 판단 근거가 있는 형식이죠. 그러므로 제가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해도 여러 사람들에게 그 사물들이 절대적으로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근거는 분명 저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정배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꺼에요. 여기에서는 ‘반복’이 중요합니다. 제가 만든 가구나 작품들이 계속해서 반복 생산이 됩니다. 그 반복 속에서 제 스타일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조금씩 시각화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에 놓여진 것들은 전부 제 생활의 일부들이에요. 모두 집이나 작업실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나름의 아름다움의 언어로 배치를 하면서 제 일상을 드러내고 있죠.

저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초기에는 F.R.P라는 플라스틱 재료를 사용해서 작업을 했었습니다. 제일 쌌기 때문에 편한 재료였죠.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만드는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독과 같은 화학성 때문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그 작품을 사가는 사람은 행복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죠. 아마도 지금에 와서 사후적으로 구성해 본다면 독한 화학 성분 때문에 나무작업에 더욱 매료될 수 있었을 겁니다.

목공방은 아내의 권유로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결혼 초기에 마련하지 못했던 식탁을 직접 만들어볼 셈이었죠. 그런데 나무 냄새를 맡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진짜 나무를 보니까 제 몸이 먼저 반응을 하더군요.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가구와 나무 작업을 이어오고 있어요. 한국적인 느낌의 디자인을 창작했고, 이 디자인을 이용하여 짜맞춤 방식의 테이블들을 만들었어요. 생활과 밀접한 가구들을 만들다보니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또 그들을 위한 무언가를 더 만들게 되고. 최근에는 나무로 만든 작품을 피비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선보였습니다. 나무로 경직된 해안선을 드로잉한 작품들이죠. 그리고 앞으로의 관심사는 쓸모없게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너무 쓸모 있는 것만 만들었더니 좀 저항하고 싶은 가봐요. 쓸모 있는 것을 쓸모 없게 만들기. 칼이지만 쓸모가 없어져 쓸 수가 없는 이런 것들이요.

저는 한동안 제 가구를 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마치 목수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목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미술가가 소외되는 느낌을 받아서 였기에) 가구를 처음 선보이기 시작했을 때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자꾸 가구와 관련된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해요. 저의 가구가 전시라는 형식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도널드 저드(Donald Judd)라는 미니멀리스트 작가가 있는데, 그 작가는 작품도 만들고 가구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모든 것을 저드의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분리가 되어있는 거에요. 작품과 작업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넌 목수냐, 작가냐?’를 물었습니다. 저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지만 전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모두 이정배일 수는 없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죠.

그야말로 제 미감에 의해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미술의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가 느끼는 볼 수 없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살면서 예민하다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요새 좀 더 자주 듣는 것 같아요. 저는 늘 제 스스로가 예술가적 소스가 많이 부족하지는 않은가? 너무 평범한 것은 아닌가? 라고 자책하곤 했습니다. 거울처럼 등장하는 나의 일상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니 현재의 제 자신을 더욱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마 제가 작가이고, 아름다움을 끝없이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하루는 제게 온종일 긴장된 시간이었습니다. 이유가 있긴 합니다. 사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거리’에 있습니다.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어 대상을 면밀히 알아보고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공교롭게도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와 나 자신 사이엔 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판단하는건 사실 어렵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오늘과 같이 나를 드러내는 자리는 정말 힘이 듭니다. 오히려 오늘 대화 중에 나온 어떤 단서나 작품, 가구, 음악, 사물들이 어쩌면 나를 은유적으로 대변해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특히 예민하게 감각하는 커피를 여러분들께 한 잔씩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따뜻한 물을 준비할테니, 각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드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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