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RMA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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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정, 이은경, 이정우
Seojung Min, Eunkyung Lee, Jungwoo Lee

2 – 16 Mar 2018
ThisWeekendRoom

Credit
참여작가|민서정, 이은경, 이정우
기획|디스위켄드룸
글|이단지
후원|서울문화재단

Artists|Seojung Min, Eunkyung Lee, Jungwoo Lee
Curated by ThisWeekendRoom
Text|Danji Lee
Support|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Preface
색에 대한 소묘
# 프롤로그
매끈하거나 거친, 투명도와 끈적임, 흘러내리는, 둔탁한, 퍼석한, 뾰족한, 갖가지 형용사적 묘사를 포함한 어떤것들, 혹은 두께와 깊이, 넓이, 때로는 속도와 냄새. RGB 또는 CMYK값, 포토샵 그래프의 분석적 지표를 신뢰해본다 손 치더라도 내가 가진 언어는 사물로서의 색을 그려낼 재간이 없다. 그럼에도 다시, 색의 신체에 대해 상상해 본다. 어쩌면 아침에 첫 모금으로 마시는 노란 오렌지 쥬스의 시큼함, 목구멍 안의 피부를 타고 내려가는낯선 차가움, 그 기분을 글로 옮기는 것이 훨씬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색이라는 물질은 실제적인 것인 동시에상상에 가까운 것이다.

“나의 일은 색을 잡는 것(hold)이고 그의 일은 그것을 바라보는 것(behold)이다” _ Amy Silman

‘색과 사물’. 두 단어를 가져오기로 결심했을 때 떠올려야 했던 것은, 색을 선택하는 누군가의 망막, 그 사람의신체가 가진 경험들이다. 표현으로써의 색을 선택하기 위해 화방에 있는 많고 많은 튜브들을 골라 담아 온다거나, 그 조차도 마땅찮아 작업실에 떨어진 수 없는 물감 방울, 겹치고 겹친 그것들 중 여러 가지를 섞어 집어 드는 습관에 익숙한 화가들의 감각 말이다. 또는 오캔² 인터페이스의 작은 점박이 팔레트를 가상의 붓으로 찍어드로잉을 시작하는 어느 사용자의 얼굴에 비친 컴퓨터의 파아란 빛과 같은 순간 말이다. 텅 빈 바탕 앞에서 가지게 되는 당혹스러움, 무슨 색이든 ‘쓸 수 있다’는 출발점, 지표를 찾아내야(만) 하는 시간. 색을 마주한 화가에게는 근육과 세포의 축적된 감각에 의해 기억 속 어떤 풍경에 대한 상상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색이 무언가를전달하는 통로라고 오해할 때, 우리는 불확정적인 감각을 공유하는 언어의 한계를 다시 확인한다. 요컨데, 세상에 (아직) 없는 색깔을 언어는 불러낼 수 있을까? 각자의 시세포를 색 표현에 대한 공통의 전제로 가져올 수있을까. 우리가 묘사하는 것은 단지 향기가 잠시 묻어 있는 담요의 부드러운 정도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이 글에서 ‘색’이라는 대상을 매일 매일 마주하는 세 작가와, 그들의 작업을 빌어 색이라는 ‘사물(성)’에대한 관찰을 하기로 한다.

# Scene 1: SUNRISE + BLACK BOX
최초에 기억들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눈으로 본 장면들이지만 우리의 내부에서 시각과 청각으로 남아 있는 원형들. 그리하여 마침내는 색과 소리가 다시 그 안에서 스스로 장면을 재현하고 있는 기억들.

[…]아침 출근길 떠오르는 해를 맨눈으로 직시하며 운전했던 일이다. 매일 지나는 익숙한 주변 풍경이지만 아침 해 뜨는 시간이 점점 늦어짐에 따라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태양을 정면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타오르는 듯한 밝은 빛에 순간적으로 매료되어 매우 고양된 감정으로 고속도로를달렸던 기억이 난다. 이 순간은 차량 앞 유리에 부착된 블랙박스에 자동으로 기록되었다. 최대 화각으로찍힌 초 저화질의 영상은 당시 나의 기억과 전혀 다른 장면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왜곡되어 있었으나, 오히려 흥미롭게 보인다. […]새롭게 채택한 기록 방법, 수단-운전하기, 블랙박스-를 탐구하는 것은 지금 여기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돌아보는데 있어 유의미한 방법이다. […]망점으로 구현된 이미지는 당시장면을 사진적으로 재현하거나 지시하기 보다는 색 입자로서, 잉크 덩어리로서 해체되어 시각을 교란하며 공간에 실재하게 된다. […]작업은 90% 이상이 물질의 문제이다. 나는 그것을 이미지가 아닌 오브제로대한다.
_민서정 작업노트 발췌

도로 위를 달리는 망막의 기억은 어떤 ‘드로잉’이다. 어느 날, 작가는 블랙박스를 열어 자신의 드로잉을 발견한다. 검은 공간 안에서 관객 없이 제 혼자 저장되었을 일출의 사건들은 저화질의 화면 노이즈와 함께 순수한 색의 원리 위에 놓여 있다. 색의 시간을 기록한 블랙박스의 스크린들은 아직 읽지 않은 소설책에서 뜯겨져 나온한 장의 페이지, 그 마저도 잘게 썰린 종이 조각들처럼 전시장에 뿌려진다. 분절된 파편들은 즉흥적이라거나감정적으로 탄생한 것이라기 보다는, 논리적으로 선택하고 계획된 판화의 과정을 통해 추출된다. 그리고 다시,종이 대신 두꺼운 합판의 물리적인 몸을 빌린다. 원형과 사각형, 기하학적인 구멍이 뚫린 합판은 로프 등을 이용해 허공에 매달리거나 벽을 지지대 삼아 놓아 두게 됨(placed) 으로서 관객의 동선과 맞물리는 볼륨을 가진다. 블랙박스라는 검은 극장, 그리고 망점과 같이 구멍을 뚫어 색을 만지는 작가 민서정의 방법은 눕히거나 떨어뜨리고 걸어 놓는, 커팅 시트지로 밀어 내어 그것을 여기 저기에 붙여 놓는 설치 매너와 겹쳐지지만 나에게는 설치 작업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다분히 회화적이다. 그렇게 작가의 내부로 들어온 일출의 부스러기들은빛의 안과 밖을 들여다 보기 위한 흥미로운 광학적 현미경이 된다.

# Scene 2: 섬광과 시간의 문제
[…]친구와 나는 그 중 가장 구석에 위치한 Garth라는 작은 집에서 정착해 살아보기로 했다. 그곳은 하루일조량이 4시간 정도 뿐이었고 그것마저 게으른 우리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도 밖을 보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밤을 새우거나 하면 아침 해를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갔다. 겨울바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겨울 바다는 그냥 추웠다. 수영도 해보고 돌탑도 쌓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하루에 한 개씩 돌을들고 왔고 늦게 일어나 해변으로 가지 못한 날에는 집에서 수집한 돌을 흑연으로 칠했다. 물감을 섞기도귀찮았고 우리가 앉아 놀던 소파 옆에 던져 놓은 짐 속에서 툭 튀어나와 있던 것이 흑연 연필이었을 뿐이다. 연필로 칠하고 손으로 문지르는 것을 반복하자 흑연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 굴곡이 진 부분에는흑연이 닿지 않아 돌 본연의 색이 띄기도 한다.
[…]돌들은 수천 마일을 떠나 현재 성북동 온돌집 소파 밑에서 매일같이 보일러를 쬐며 작은 신발상자 속에 묻혀 있다.
_이정우 작업노트 中

이 곳에서 저 곳으로의 이동, (개입 된) 옮겨 놓기와 대상에 대한 일시적인 지시, 혹은 그러한 지시들의 무의미함, 의미불가에 대한 또 다른 ‘지시’를 위한 수행들은 이정우가 스스로의 (작업)조건들을 풀어오던 방식이다.짧은 섬광이 기록하는 이미지와 달리 촉감은 각자의 친밀하거나 낯설음의 사이에서 공명한다. 한 손에 잡히는돌멩이의 촉감이 기억하는 외딴 섬. 작가는 흑연으로 문지른 돌멩이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고 ‘사진’을 찍었다. 손에 잡히는 실재를 쫓던 작가는 왜 다시 말끔한 렌즈의 뷰 파인더로 옮겨와 이 새삼스러운 이미지의 껍질을 관찰하게 되었을까. 나에게는 전혀 돌멩이 스럽지 않은 이 ‘돌멩이의 사진’은 그것이 회화의 붓질이 아니라카메라의 방식이기에 (강력한) 시간성의 문제가 된다. 수 천년을 마모되어 내 손에 잡힌 오늘의 조약돌, 작은돌 위를 흑연으로 그어 댔을 추운 겨울 누군가의 낮과 밤, 그리고 비로서… 제 각자의 시간을 ‘백분의 일’ 초도채 되지 않는 섬광으로 압축하는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 그 시간들의 충돌. 모든 발견된 사물들은 우리가 그것을 호명할 때, 호명되기 이전의 대상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카메라의 짧은 빛으로 기록된 조약돌은 기억으로부터 대상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기억이라는 시간성’을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 Scene 3: 색이라는 사물
다시 색의 신체로 돌아가 보자. ‘색’이, 우리의 신체가 경험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그 맞은 편에는 정보의 송신자, 색의 신체가 있다. 송신자는 수신자의 존재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도 탄생과 소멸을 가진다. 몇 억 광년이떨어진 행성의 빛은 여전히 죽어 없어져버린 ‘오늘’의 흔적을 우주공간으로 쏘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제 자리를 벗어난 것(The matters considered out of place)’은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 하지만이‘제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은 다른 차원과 시간을 마주하게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횟집 주방 바닥에 나뒹구는 생선의 내장과 여우 목도리의 형태로 박제처럼 변해버린 여우는 제 자리에 있지 않는 기이한감각을 선사하며, 아직 살아 있는 죽음과 또 다른 생명을 부여 받은 죽음을 목격하게 만든다.
유기적인 사물의 순환은 매번 다른 양상으로 다가온다. 추상적인 형상으로 드러난 겹겹이 쌓인 레이어들은 경계에 있는 대상들이 가진 미지성을 보여주는 통로로 전환된다.[…] 추상적 형태 안의 공간과 그 외부공간은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외부공간이 사실을 재현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내부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드러내어(갈아내거나 지워서) 이미지를 만든다. 색의 채도와 명도에 따라 역으로 드러난 층위들은그 안에서 다양한 역동성을 만들어 낸다.
_이은경 작업노트 中

이번 전시에서 이은경은 박제된 동물의 형상과 같이 정지된 죽음을 회화로 ‘재현’한 이미지와, 사포의 개입으로 인해 갈아내어 지워지고 없어지는 안료 두께의 단면들을 파헤침으로써 생기는 흔적을 같이 배치함으로써관념적인 회화의 ‘공간’을 설명한다. 심리적인 환영은 구상적인 묘사 위에, 구체적인 사실로서의 크랙들은 추상적인 화면 위에 놓아 둔다. 환영과 현실, 사라짐과 드러남의 끝없는 공전. 그 인식적 원근법이 공존하는 이은경의 캔버스는 그녀가 만지는 안료들에 대한 오랜 감각 경험들을 동반한다. ‘색’이, 혹은 회화가 도구 만일 수없다는 것을 그리는 이는 언제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남은 색은 대개 대상 너머의 개념과 현상 앞에 이미지로써 정착하며 환영이라는 이름 앞에 초라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회화가 가진 모든 역사는 이와 마찬가지로 이미지에 함몰되지 않는 실재를 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 에필로그
색은 검은 구름과 함께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소리와 같이 늘 비 언어적인 것으로 향한다. 색의 물질(성)이 언어 이전의 현상들이라고 가정했을 때, 대상과 화자의 일치는 늘 어긋나며 보는 이에게도 동일한 감각의 선행을요구하기에는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소묘가 그렇다.) 세계에 대한 결핍과 갈증으로탄생한 화가의 색은 우리를 통해 밖으로 나와 다시 화가를 응시한다. 대상을 만진다는 것은 결국 그것에 의해스스로 응시 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마콘(pharmakon)³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는 이번 전시는 궁극적으로, 매일 매일 그것을 마주하는 일인칭의 화자들, 작업실에서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는 그들의 구체적인 도구를다시 살펴 보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들에게 색이라는 사물은, 보았지만 알지 못했던 대상의 뒷면, 확인하고잡고 있지만 지금은 없는 것, 끊임 없이 떠오르고, 또 끊임없이 떠나가고 있는 것에 대한 감각을 물질화 시키는일이다 . 이번 전시는 색이라는 동질적인 인식의 지평 위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사유나 기억으로서의 예술행위를 들여다보는 연구에 가깝다.

글|이단지

Seojung Min, Eunkyung Lee, Jungwoo Lee, 《PHARMAKON》, 2018, Installation view, ThisWeekendRoom
민서정 Seojung Min, 반점들 Speckles, 2018, screenprint on plywood, stickers, 120 x 160 cm
민서정 Seojung Min, 무제 Untitled, 2017, screenprint, 40 x 55 cm
이은경 Eunkyung Lee, 제자리를 벗어난 것들 1 The matters considered out of place 1, 2018, half-chalk ground, egg tempera, 150 x 180 cm
이은경 Eunkyung Lee, 제자리를 벗어난 것들 2 The matters considered out of place 2, half-chalk ground, egg tempera, 150 x 175 cm
이정우 Jungwoo Lee, KW0001, 2018, silk screen on reflective sheet and urethane, 97 x 130 cm (right)
이정우 Jungwoo Lee, KW0002, 2018, silk screen on reflective sheet and urethane, 97 x 130 cm (middle)
이정우 Jungwoo Lee, KW0003, 2018, silk screen on reflective sheet and urethane, 97 x 130 cm (left)
이정우 Jungwoo Lee, KWov01, 2018, silk screen on reflective sheet and urethane, 40 x 50 cm (left)
이정우 Jungwoo Lee, KWov02, 2018, silk screen on reflective sheet and urethane, 40 x 50 cm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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