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미 개인전
Hyemi Kim’s solo exhibition
1 – 15 Nov 2017
ThisWeekendRoom
Credit
주최|김혜미
후원|서울문화재단
Artist|Hyemi Kim
Support|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Artist Statement
전시 제목 는 단어 ‘ 쉘터 Shelter’ 에 대해 조사하던 중 발견한 문장이다. 아브리 Abri 는 쉘터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제목으로 빌려온 이 첫 문장에 이어 아래와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 몇몇 학자들은 이 단어가 ‘ 나무 Arbre’, 혹은 라틴어 ‘apericus’로 ‘햇볕에 노출된’, ‘열린’ 을 의미하는 단어 ‘화창한 Apricus’ 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햇살 속에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혹독한 날씨로부터 피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추론은 반 – 직관적일지 모르나 아름답다.”
나는 이 어휘 설명에서 쉘터를 둘러싸고 등장하는 뜻밖의 단어들을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아브리와 데브리가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는 문장이 실용적인 설명을 넘어 의미심장한 비밀을 품고 있는 것으로 들렸는데, 쉘터를 형성하게 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파괴, 전쟁, 재해, 병, 죽음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문장을 발견한 당시 나는 군용 막사의 역사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고 거기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임시 거주지 temporary shelter’, ‘ 텐트 tent’, ‘바라크 barrack’, ‘진영 camp’, ‘오두막 hut’, ‘숙소 quarter’, ‘대형 천막 marquee’ 과 같은 단어들은 안전을 보장하는 보호막이나 안식처를 의미한다기보다 도래할 무덤의 이미지를 연상케했으며, 때마침 마주친 ‘데브리’ 는 계시의 단어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어서 몇몇 학자들이 추론한 아브리의 낙관적인 어원에서 나무 그늘 – 나무가 제공하는 피난처 – 나무로 만든 방주 – 폭우 – 바다 – 홍수 – 구름이 걷힌 하늘 – 한줄기 뜨거운 햇볕 – 불기둥 – 사막 – 오아시스 – 그늘 – 구름기둥 – 햇볕을 차단하는 – 닫힌 – 막사 … 식의 연상이 이어졌고, 이런 연상 작용은 직관적이고 임의적이면서 망상적이었다.
나는 2016년 1월 베니스에서 우연히 6장의 사진 세트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이와 관련된 경험과 조사 내용을 글과 이미지로 기록해왔다. 이것은 파편적이고, 우연적이고, 유동적이며, 가변적이고, 선형적 시간의 흐름이 파괴되어 있다. 말하자면 “느슨한 연관성()”에 의해, 혹은 “무관해 보이지만 동일한 기운의 영향 아래(*)” 작동되는 기록물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기 보다 수집한 정보들을 조합하고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맥락이 생겨났고, 나는 이런 식으로 잠복해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들춰내면 모두가 연결되어 거대한 망을 구성할 수 있으며, 사소함에 몰두하는 것, 이들을 재구성하고 재건축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일부 기록물과 더불어 여기에 한 반응으로서의 작업들이 동반된다. 이 작업들은 기록물에서 언급된 소재들을 다른 재료와 형태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큰 축을 차지하지만, 진행할수록 재현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이들 사이에 또다른 문맥이 생겨나면서 확장되었다. 이를테면 기록물에서 심해 (바다), 물 (홍수) 을 암시하던 파랑색은 흔히 볼 수 있는 방수 천막이나 공사 현장의 덮개 – 우기에 베니스의 곤돌라는 파란 천으로 씌워진다 – 와 같이 임시적인 구조물이라는, 조금 더 현실적인 맥락에서 표현된다.
(* 2002년 라이언 갠더는 <느슨한 연상들Loose Associations>이라는 제목의 렉쳐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98장의 이미지를 한 점씩 보여주며 그와 관련된 일련의 일화, 사실 정보를 마치 이야기 타래를 풀듯 말하는데, 앞의 이미지와 내용은 뒤에 나오는 이미지와 내용과 모종의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진다. 그는 아래와 같이 말하며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 안녕, 나는 라이언이야. 음…. 이 모든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데, 이 연관성들은 이따금 조금 느슨할 수도 있어.”)
(** W.G.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1990)을 번역한 배수아는 작품 해설의 첫머리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인용한다. “ 나는 테라스의 열린 문 근처 탁자에 앉아 그간 기록한 메모들과 짧은 스케치들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로 무관하게 일어난 사건들, 그렇지만 나에게는 동일한 기운의 영향 아래 일어났다고 보이는 사건들의 은밀한 교류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목판화는 레이저 컷팅되거나 표면을 파낸 판이 종이에 프린트되었다. 표현을 최대한 제거하고 색면, 혹은 단순한 형상으로 화면을 구성하였는데, 이미지가 읽히는 것보다 보여짐으로써 기록물을 감상하는 관점과 분리되길 원한다. 분해된 목판은 ‘ 잔해 ‘ 라는 맥락에서 재구성되었고, 전시 공간에 일종의 무게감 weight 을 제공한다. 이것은 모래주머니 벤치와 상통하며 감상자는 실제로 앉거나 쉬어갈 수 있다.
나는 판화매체를 다루면서 점점 판화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물질성이나 효과보다 미술사에서 지니고 있는 지위, 정치적인 사유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판화는 남성 위주의 페인터들에 의해 평가 절하되어왔고, 현재도 별로 멋지지 않은 uncool 매체로 여겨진다. 특히 목판화의 경우 특별한 기술없이 어린아이들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전문적인 포지션 – 아마추어 – 에 위치하기도 하며, 이 지점에 대해서는 작업을 하며 끊임없이 자문한 부분이다. 수집해 온 기록물들을 배열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그 안에서 나의 위치는 온전한 제작자가 아닌 발굴한 것을 보관하거나 중재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판화 작업에서도 유사하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질 좋은 판이나, 잉크가 고르게 올라간 롤러나 압력이 잘 맞추어진 프레스가 제작한 것이 아닌가. 나는 판을 찾고 롤러질을 하고 프레스를 돌리는 입장에 지나지 않는가. (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