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민, 김지평, 최수련
Bomin Kim, Jipyeong Kim, Sooryeon Choe
20 Oct – 7 Nov 2021
ThisWeekendRoom
Credit
참여작가|김보민, 김지평, 최수련
기획|이은주
글|이은주
에디터|김효정
그래픽디자인|물질과비물질
사진|정진우
설치|김연세
후원|서울문화재단
Artists|Bomin Kim, Jipyeong Kim, Suyeon Choe
Curated by Eunju Lee
Text|Eunju Lee
Editor|Hyojung Kim
Graphic Design|waterain
Photography|Jinwoo Jung
Installation|Yeonse Kim
Support|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Preface
‘아으 다롱디리’는 백제가요 <정읍사>의 후렴구이다. <정읍사>는 행상 나간 남편이 밤에 무사히 돌아오도록 달이 높이 비춰질 것을 기원하는 여인의 노래로, 조선시대 궁중의 나례에서 춤과 함께 불리기도 했다. 아으 다롱디리는 뚜렷한 의미가 없는 음성어이지만 그 특유의 운율은 시를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데 리듬이 되어 오랜 시간 구전되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전시에서는 ‘여성’과 ‘전통’의 뿌리를 탐구해왔던 김보민, 김지평, 최수련 작가가 <정읍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이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몇 해 전 <정읍사>를 다시 읽으면서 이 시가에서 연상되는 장면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밝은 달 아래 있을 옛 여인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에 담긴 사랑이, 무엇보다 후렴구의 음성어가 주는 목소리의 공명감이 그러했다. 백제가요 <정읍사> 속 여인의 목소리가 시대를 넘어 나에게도 공명하는 그 느낌은 축약된 시가 가지는 고도의 함축된 정서를 현재의 것으로 되살아나게 했고, 옛 인간의 감정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 새삼스러운 감회를 느꼈었다. 내가 느낀 그 시적 장면에 작가들의 자의적 해석을 덧붙여서 시각화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소리는 집단적으로 구전되면서 무수한 변용을 거친다. 그 소리가 전혀 다른 시간대와 문화권을 가진 현재의 미술작가들과 만남으로써 시각 이미지라는 또 다른 몸을 얻게 된다면 어떨까? ‘여성’과 ‘전통’의 뿌리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아온 김보민, 김지평, 최수련 작가와 만나 <정읍사>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누었다.
<정읍사>는 조선 전기 『고려사(高麗史)』의 「악지(樂志)」 편에서 언급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정읍에 사는 한 여인이 행상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걱정하여, 산 위의 돌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길을 가다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함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요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음력 섣달 그믐날 악귀를 물리치는 의식인 나례(儺禮)에 춤과 함께 불려 그 가사가 한글로 『악학궤범』에 수록되었다. 이 전시의 제목도 『악학궤범』에 실린 <정읍사>의 후렴구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뚜렷한 의미가 없는 음성어로 시에 통일성과 운율을 부여하여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만듦으로써 구전되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높이 떠 있는 달이 삶의 “즌ᄃᆡ” 즉 진 곳에 빠지지 않도록 밝은 빛을 비추어 주고, 상처를 입을지 모를 불안에서 구원해줌으로써 사랑하는 이가 무사귀환하듯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불운을 정화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리라.
한편으로, 『고려사』에 수록된 <정읍사>에 대한 설명에서는 여인이 고개에 올라가 남편을 바라보다가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후대에 전해진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망부석 설화는 <정읍사>를 남편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과 기다림을 미화하는 동아시아 열녀 이데올로기 맥락에서의 해석 틀을 제공했고, 이후 <정읍사>에 대한 많은 연구들 역시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규정해왔다. <정읍사>는 어느 시점부터 더이상 구전되기를 그치고 기록된 자료로서의 전통 안에서 이처럼 전형화되어 버렸다. 이 노래를 기념하기 위해 정읍에 세워진 망부상은 내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 이미 여기에 없는 것에 대한 표상일 뿐이다. 이 전승의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목소리는 무엇일까?
구전가요의 원동력인 목소리, 말과 이야기의 힘은 집단 무의식에 의해 공유되어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문화권의 특성을 더해가며 서로 다른 목소리와 얼굴로 이야기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정읍사>가 각자에게 공명되는 지점을 출발점으로 하여 제각기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고자 했다. 전시 준비 워크숍에서 작가들이 제안한 책들을 같이 읽었는데, 김보민은 구전되는 이야기의 힘을 생각하게 한 태 켈러(Tae Keller)의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김지평은 한무숙의 「돌」이 포함된 단편소설집, 최수련은 논문모음집인 『동아시아 여성의 기원: 열녀전에 대한 여성학적 탐구』를 추천했다. 각자의 기호가 반영된 이 책들을 함께 읽으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작가들이 그간 해왔던 작업들과 <정읍사>의 연결점들이 좀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졌다. 달이 떠 있는 풍경 아래 있는 옛 여인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 공명이 세 작가가 그간 제각기 탐색해온 작업의 맥락들과 이어지면서, 필자가 처음 <정읍사>에서 발견했던 것과 다른 레이어들이 추가되고 더 풍부한 이야기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전시는 그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져 나가 또 다른 이야기를 낳는다.
글|이은주 (독립기획, 미술사)






















